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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명소 (나트랑Nha Trang, 달랏Da Lat, 붕따우Vung Tau, 사파Sa Pa, 무이네Mui ne, 호이안Hoi An, 후에Hue City, 하이퐁Haiphong )

by 일상속 탐험 2023.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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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 Nha Trang
중국 베트남 카인호아성에 속한 해변도시다. 베트남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따 라 위치하며 하노이에서 1,278km 호찌민에서 448km 떨어져 있다. 다도해와 산, 모래사장으로 둘러싸인 냐짱에서는 일년 내내 깊고 푸르며 따뜻한 바닷물을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인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베트남 남부의 주요 어업기지이며 예로부터 알려진 군사기지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로 1862년 프랑스인에게 점령당하기 전에는 베트남왕국에 속해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파스퇴르연구소가 설치되어 열대성 질병을 연구하였다. 해안연구소가 세워져 남중국해의 어업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이곳을 지나는 하노이 ~ 호찌민 철도도 이때 부설되었다. 부근의 해변을 일찍부터 개발하 여 해안휴양지가 개발되어 있다. 시의 북쪽 근교에는 참족이 세운 포나가르 신전이 있다.
달랏 Da Lat
럼동성의 성도 달랏은 호찌민에서 북동쪽으로 약 30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해발 1,500m의 이 도시는 프랑스 옛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알렉산드로 예르생 박 사의 제안에 따라 1897년에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달랏은 풍부한 자원과 호 쑤언 흐엉, 탄 토, 자 티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뚜옌럼 등의 인공호수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의 달랏 화훼정원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20세기 초 프랑스가 지배할 때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현재는 신혼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주택은 기복이 많은 언덕 위에 프랑스식 빌라가 많다. 시내에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둘 레 약 5km의 스언흐엉 호수가 있으며 1976년에 세워진 대학과 공항이 있다. 교외에는 일본 이 전쟁배상으로 건설한 다님댐이 있다.
호찌민과는 고속도로로 이어지고 남중국해 연안의 항구 판랑과는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도시의 명칭은 이 지역의 종족이름에서 비롯되었는데 ‘라트인의 시내’ 라는 뜻이다.
붕따우 Vung Tau
주변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로 항구도시이자 해변 휴양지다. 호치민에서 남쪽으로 125km 떨어져 있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총독과 고관들의 휴양지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한국군과 미군의 주월사령부와 휴양소가 있었다. 전쟁 뒤에는 경공업이 발전하였다. 또 1970년대 초에 유전이 발견되어 1990년에는 250만 톤의 원유를 채취하였다.
항구에는 연료저장소ㆍ수로안내소 등이 있다. 반도의 왼쪽 해안은 구붕따우라 불리며 ‘동양 의 진주’ 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 때부터 개발되었으며 저우해변ㆍ주옥해변 등의 관광지가 있다. 반도의 오른쪽 해안은 신붕따우라 불리며 모래가 부드럽고 수심이 얕 아 휴양지로 새로 개발된 곳인데 이곳에는 투이반해변 등의 관광지가 있다.
유적으로는 베트남의 정치가 응우옌반티에우의 별장이었던 화이트하우스가 유명하다. 1889년에 프랑스 총독의 별장으로 지은 건물인데 지금은 역사유물과 골동품 등이 전시 되 어 있다. 그밖에 두아해벼느이 나지막한 산에 1974년에 만든 높이 약 30m의 예수상이 있고 1969년에 세운 사찰 네판사에는 길이 12m의 와불이 있다.
사파 Sa Pa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km 떨어져 있다.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위 치한 산악 마을이다. 베트남 전체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다. 산 속 계곡에 자리잡고 있 어서 연중 안개 속에 묻히는 날이 많다. 많은 숙박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이 자리잡고 있어서 인근에 산악 소수 민족을 보러 오거나 멋진 자연 경관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여행객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시내에 있는대표적인 볼거리는 사파시장과 함롱산 공원이다.
마을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아서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다. 마을 곳곳에서 여행객들을 상대 로 토속적인 물건을 파는 소수민족을 볼 수 있다. 사파에서 남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곳 에는 검은 몽족이 사는 깟깟마을과 신짜이 마을이 있다. 북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는 자오족이 많이 사는 따핀마을이 있다.
무이네 Mui ne
도시민들을 위한 한적한 휴양지로 호찌민에서 자동차로 약 4시간 걸린다. 길이 약 10km의 이르는 긴 해변을 따라 소규모의 리조트호텔,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다. 파도가 거칠고 높아서 서핑ㆍ윈드서핑을 하거나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하다.
부근에 있는 ‘피싱 빌리지’ 에서는 둥근 바구니처럼 생긴 전통 배 ‘퉁’ 과 그물로 물고기를 건 져 올리는 베트남 사람들의 고기잡이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이네에서 남쪽으로 약 5km 떨어져 있는 곳에는 지름 약 2~3km 규모의 모래언덕이 있는 데 사막과 같은 풍광과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무이네 바닷가 계곡 안쪽에 있는 요정의 샘, 리틀 그램드 캐니언 등도 명소로 알려져 있다.
호이안 Hoi An
다낭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부글라강 어귀의 남중국해 연안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파이포라고 하였다. 호이안은 16세기 중엽 이래 인도, 포르투갈,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상선이 기항하여 무역도시로 번성하였다. 당시에 거래된 물품으로는 도자기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일본인 마을이 생겨날 정도로 일본과 교역이 잦았다.
일본인 마을의 흔적으로 내원교라고 불리는 돌다리가 남아있다. 현재 호이안의 복고적인 도시외관은 대부분 중국인들이 만들었다. 호이안은 복고적인 도시의 분위기 때문에 최근 관 광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오래된 가옥을 개조하여 멋스러운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일본교로 불리는 내원교와 풍흥 고가, 쩐가 사당, 꾸언탕 가 등이 있으며 중국인 들의 회합장소로 사용된 복건회관, 무역도자기 박물관,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이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한국군이 주둔하였다.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후에 Hue City
베트남의 대표적인 문화유적 도시 가운데 하나인 후에는 고대 베트남의 수도로 이곳에는 수 많은 역사적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안남산맥 기슭의 안남평야에 자리잡고 있다. 남중국해 연안에서 8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얕고 넓은 향강이 가로질러 흐른다. 강 왼편의 도심부에는 19세기 초 중국식으로 지은 베트 남제국의 왕국 다이노이가 있는데 후에왕조는 이곳에서 수세기동안 베트남을 통치했다.
식민지시대에 프랑스인들은 강 오픈편에 거주했으며 오늘날 이 도시의 동쪽에는 상업지구 가 들어서 있다. 기원전 200년경 남베트의 중국군사령부가 주둔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200년경에는 참족이 지배하였다. 이후 중국에 정복당하기를 반복하다가 1635년 중부 및 남 부 베트남을 지배하던 구엔가의 수도가 되었다. 1802년 베트남 통일 후 구엔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1883년부터는 아시아에 진출하려는 프랑스에 점령되었다. 제2차 세게대전이 일어나자 프 랑스가 패퇴하고 1940년 ~ 1945년 일본 점령하에 있었으며 1947년 4월에는 비공산계의 베트남 임시 행정위원회가 여기서 조직되었다. 1949년 7월 1일 새로 수립된 베트남공화국 이 수도를 사이공으로 정하면서 예로부터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이곳은 기능을 잃어버렸다.
1946 ~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초기에 피해를 입었고 1963년과 1965년 심각한 내 란에 휘말렸다. 베트남전쟁 때인 1968년에는 베트공의 공습으로 심한 피해를 당했다. 이때 많은 옛 왕족의 건물과 박물관, 도서관, 불교사원 등이 파괴되어 그후 재건사업을 추진하 고 일부가 복구되고 있다. 호찌민시와 하노이를 연결하는 철도, 도로변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며 종교, 문화, 상업의 중심지로 정미, 제재, 섬유, 시멘트 공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후에대학, 후에제국행정대 학이 있고 응우옌왕조의 무덤들이 부근에 있다.
하이퐁 Haiphong
송꼬이강 삼각주 위에 있는 베트남 제일의 항구 도시다. 주요 공업도시로 타이빈강 분류인 쿠아캄강 우안 하구로부터 25km 상류에 위치한다. 1세기쯤 전에는 보잘것없는 한촌이었으 나 1874년 프랑스가 항만을 건설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홍가이, 몽카이, 빈 등 국내 항 구들과의 교역은 물론 러시아, 중국 및 프랑스 등지와의 무역이 활발하다.
석탄, 옻, 커피, 담배, 시멘트 등을 수출하고 기계, 석유, 비료 등을 수입한다. 프랑스 식 민지시대부터 시멘트공업 등이 이루어졌다. 독립 후에는 시멘트 외에 방적, 알루미늄, 통 조림, 유리 등 공업이 일어나 베트남 최대의 공업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국제철도인 덴위에선의 종점이며 하노이와는 철도 외에 수로ㆍ육로로 연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대 피해를 입었으나 19세기 말에 건설된 시가지는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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